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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캄보디아 양민 200만 명이 학살된 이른바 ‘킬링필드’ 사건, 기억하시나요? 

핵심 전범인 당시 정권의 이인자 ‘누온 체아’가 지난 주말 사망했습니다. 

책임자 단죄와 진상규명이 더욱 어려워질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1970년대 킬링필드 사건의 주범인 당시 최고 권력자 ‘폴 포트’는 1998년에 사망해서 법정에서 단죄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당시 권력의 이인자였던 ‘누온 체아’는 재판 중이었지만 지난 일요일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캄보디아 법원은 "93세 누온 체아가 수도 프놈펜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라고 발표했습니다. 

1975년 친미정권을 몰아내고 캄보디아를 장악한 급진 사회주의 ‘크메르루주’ 정권 

누온 체아는 ‘브라더 넘버 투’로 불렸습니다.

공산당 부서기장을 맡아서 권력 실세 2위로 군림하면서 당과 국가안보를 책임졌는데요. 

크메르루주 정권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면서 도시인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지식인과 부유층도 대거 학살했습니다. 

당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00만 명이 숨졌는데, 이 사건이 바로 ‘킬링필드’로 기록된 역사입니다. 

40여 년 전 일이지만 전범 재판은 완결되지 못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누온 체아가 크메르루주 정권에서 극단주의 정책을 담당했고, 

양민 숙청과 처형에 관여했다"라고 주장하는데요. 

누온 체아는 "자신이 양민학살에 전혀 책임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유엔과 캄보디아 사법부가 함께 설립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2007년, 생존해 있는 전범들을 체포해 기소했고 본격적인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누온 체아는 백발에 볼이 움푹 팬 노인의 모습으로 법정에 섰는데요. 

줄곧 선글라스로 시선을 감췄고 고혈압, 심장질환 등 건강문제를 호소했습니다. 

그는 재판장에서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인했습니다. 

2014년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2016년 최종심에서 원심이 확정됐는데, 

지난해 또 다른 심리 재판에서도 종신형이 선고됐지만, 판결에 불복해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누온 체아는 생전에 단 한 번도 대학살에 대해 반성을 내비친 적이 없었고 

사망 직전까지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핵심 전범인 누온 체아가 사망하면서 역사적 단죄와 처벌이 더 어려워질 거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옵니다. 

누온 체아의 변호사는 “피고가 사망하면 사건이 종결되기 때문에 그는 무죄다”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 전범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단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대학살 진상 규명과 역사 청산을 두고 캄보디아 현세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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